엔카

우리가 <모카> 콘텐츠를 만들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해당 차량의 데이터를 불러오는 겁니다. 데이터를 끌어오기 위해서는 메이커와 차명을 고른 뒤 연료 타입과 세그먼트(크기)를 설정해야 하죠. 맞아요. 자동차 전문가들에게 이는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. 그런데 이 차, 그러니까 V90 크로스 컨트리의 콘텐츠를 만들 때는 그 과정이 상당히 길고 고통스럽게 변했습니다. 세그먼트를 어떤 걸로 설정할지 애매했거든요. 중형차에 넣기엔 좀 크고, 생김새는 왜건일지언정 V90이 있으니 RV로 부르기는 어색하고, 그렇다고 SUV로 하려니 반박 논리가 많았기 때문입니다. 이 사례는 이 차의 성격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. V90 크로스 컨트리가 크로스오버카(장르파괴차) 내지는 ‘잡탕차’라는 사실을.

이 차는 볼보의 여러 가치를 뒤섞은 모델입니다. 사실 이렇게 장점을 추출해서 만들면 이도 저도 아닌 게 되기 쉽습니다만 막상 타보니 매력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겠더군요. 이를테면 S90의 프리미엄 내장을 고스란히 넘겨 받았고 짐 공간의 활용성은 V90(S90의 왜건 버전) 판박이입니다. 험로 주행성은 진짜 SUV인 XC90에 버금가는 데다 스타일은 짐짓 오프로더를 떠오르게 하죠. 그래서 ‘잡탕’으로 보았던 시선을 철회하기로 입을 모았습니다. 장점만 모았더니 진짜 장점 덩어리가 된 차예요. 좋은 크로스오버가 된 거죠.

이 차 점수가 좋은 이유의 결정적인 한 방은 ‘대안이 없다’는 것. 스바루 아웃백이나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가 비슷한 성격 품지만 국내에는 안 들어오죠. 비단 시장 환경뿐 아니라 차 자체도 훌륭합니다. 가령 V90의 차고를 물리적으로 65mm 높였음에도 쫀득한 주행성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. 2톤에 이르는 무게에 비해 제법 잘 나가는 것도 사실이고. 보그워너제 사륜구동이 핸들링을 살짝 맹탕으로 만든 것만 빼면 승용차 모는 감각 그대로 탈 수 있더군요. 오프로딩에 도전해본 건 아니지만(그러기엔 너무 비싼 차임) 최저지상고가 모하비 수준이라고 하니 험로 주행성도 기대할 만합니다.